원래 가지고 있는 지병과 타고난 몸 덕분에 나의 면역력은 다른 사람에 비해 좋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쉽게 아플 것을 알기에 나름 철저하게 관리를 하는데 요 한달동안 이사를 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학교 일도 엄청나게 많았었기에 몸 관리를 소홀히 했었다. (거기다 스트레스도 엄청 받음..)
참고 : 이사를 가다. / 새학년을 조금 일찍 시작하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주 지독한 감기에 걸려버렸다. 한여름에 감기라니.. ㅠㅠ
초기 콧물이 좀 나고 기침을 할 때 쉬었어야했는데 바쁜 학교 일로 인해 쉬지 못하고 계속 달렸더니 점점 심해져서 결국 폐병 환자 수준의 기침과 귀와 이까지 아픈 급성 부비동염까지 발전해버렸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바로 이비인후과를 달려가 콧물과 농을 빼는 진료를 받거나 내과에 가서 링겔 하나를 맞았겠지만..
내가 사는 곳은 호주! 죽을 병이 아닌 이상 우리나라처럼 간편하게 저런 진료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GP라 불리는 가정의학과 (General Practitioner)에 우선 가서 소견서를 받고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예약해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미 최소 한 주가 걸린다. 물론 최소 한주라는 것이지 보통 2-3주는 기본이라 그 사이에 감기든 부비동염이든 나아지게 마련이니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여기서 볼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이렇게 아플 때 찾게 되는 것이 병원보다는 약국이다.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감기약 중 하나인 Codral (코드랄)은 어느 약국을 가든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코드랄도 종류가 열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만성 부비동염을 가진 난 감기에 걸리면 저런 일반 감기약은 잘 안듣는지라 코감기약을 먹어야 그나마 증세가 나아진다. 우리나라에서 처방전 없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슈도에페드린이 들어간 코감기약을 여기 약국에서도 팔긴하는데 우리나라보다 사는 법이 조금은 까다롭다. (우리나라에선 코나본정이라고 팜) 슈도에페드린이 마약성분이라 나쁜 용도로 쓰일 수 있다보니 약국 뒤쪽에 있는 약사에게 가서 사야하는데 약사에게 '코드랄 오리지널 데이 앤 나잇' 주세요~ 하면 심각한 표정으로 신분증을 달라고 한다. 신분증을 조회해 등록을 하고 약을 가지고 오면 바로 취조 타임(?) 이어진다. '이거 이전에도 먹어본적있니?' '임신한 건 아니지?' '이거 먹고 운전은 삼가해' '혹시 알러지 있니?' '이거랑 파나돌(타이레놀)은 같이 먹으면 안돼!' 등등 걱정이 가득 담긴 질문과 주의점에 대해서 듣고 다 대답을 해야 그제서야 약을 밀봉된 박스에 넣어 건네 준다. 그럼 그 박스를 계산을 하는 카운터에 들고 가 계산을 해야 겨우 감기약 한통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감기약 하나 사는데 뭐가 이리 복잡한지;;)
(감기약에 들어간 슈도에페드린을 정제해서 마약으로 쓰는 게 호주에서 마약을 구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
나처럼 만성 부비동염 환자인 고집군은 이렇게 약사가 꼬치꼬치 캐묻는게 싫어서 감기에 걸릴 때마다 나를 부려먹는다. 덕분에 아마 내 이름은 슈도에페드린 상습 복용자로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낮에 먹는 약 4알과 밤에 먹는 약 2알이 4 세트로 들어있는데 한번에 2알씩 먹어야하지만 많이 심하지 않을 땐 한알만 먹을 때도 있어서 보통 한통을 사면 일주일정도 먹게 된다.
비타민 C와 감기약으로 일주일간 버티다 보면 보통 감기는 거의 다 낫는 편이지만 거기서 차도를 안보이고 더 심해지게 되면 폐렴이나 중이염으로도 갈 수 있으니 그땐 꼼짝 없이 의사를 보러가야한다. 의사보러가는게 가끔 병을 더 키우는게 아닐까 할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다 보니 감기에 걸리면 정말 몸을 많이 사릴 수 밖에 없는 호주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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